빌 브라이슨 발칙한 영국산책
팔자에 없는 줄 알았던, 영국 배우 팬질을 시작하면서 구입한 책이다(뭐든 일단 시작하면 책부터 사고 보는 나란 인간...). 저자 빌 브라이슨은 미국 아이오와 주 출신의 미국인으로, 젊은 시절 유럽에서 배낭여행을 하다가 잠깐 들른 영국이 마음에 들어 아주 정착해버렸다. 이후 23년을 영국에서 살고 현재는 미국으로 이주했다. 이 책은 저자가 고향인 미국으로 돌아가기 전 영국 생활을 정리하며 영국의 최남단부터 최북단까지 구석구석 여행한 기록을 담고 있다.빌 브라이슨의 책이 대체로 그렇듯이 유머와 조롱, 풍자와 냉소가 가득하다. 낯선 영국 지명과 영국식농담이 잔뜩 나오는데도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건 순전히 빌 브라이슨의 재치 넘치는 이야기 덕분이다. 영국에 관한 깨알 같은 정보도 많다. 가령 어떤 영국인이 경, 백작, 공작이라는 호칭으로 불린다고 해서 그가 정말 그런 지위를 누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영국에서 사용되는 작위는 4만 개나 되지만 실제 귀족의 숫자는 120명 이하이며, 이는 영국 인구 전체의 0.2퍼센트에 불과하다. 몇몇 작위는 여자 후손들에게 승계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그렇게 할 수가 없다. 매년 평균 네다섯 개의 귀족 작위가 사라지며 이런 추세가 계속될 경우 귀족 제도의 세습은 2175년에 완전히 사라진다.저자에 따르면 미국인은 강렬하고 즉각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반면, 영국인은 소소하고 지속적인 행복을 추구한다. 이를테면 미국인은 끊임없이 입속으로 술이나 담배, 마약 등을 넣으며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반면, 영국인은 따뜻한 밀크티와 달콤한 비스킷 한 조각에 행복을 느끼는 식이다. 미국 사람인 저자는 영국 사람들의 이런 면을 답답하고 지루하게 여겼지만, 어느 비 오는 날 밀크티를 마시고 비스킷을 먹으며 행복을 음미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어느새 나도 영국 사람 다 되었군! 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저자는 이러니저러니 해도 영국을 몹시 사랑했던 것 같다.
해박한 지식과 유머러스한 뒷이야기로 가득한
빌 브라이슨만의 영국 여행기
나를 부르는 숲 , 빌 브라이슨 발칙한 유럽산책 의 저자 빌 브라이슨. 그가 이번엔 20년간 자신의 보금자리였던 영국에서의 생활을 정리하며 고별여행을 떠난다. 지금까지 그의 여행기가 늘 그랬듯이 이 책에도 거침없는 입담과 그의 해박한 지식이 여실 없이 드러나 있다. 축구라면 밥 먹다가도 뛰쳐나가고 곧 폭우가 쏟아질 것 같은데도 날씨가 좋다고 말하며 길 찾는 이야기로만 반나절을 떠들 수 있는 영국인들의 모습. 30마일을 가기 위해 120마일을 이동해야 하는 철도체계나 2175년이면 모두 사라져버릴지도 모르는 영국의 귀족들, 사람과의 접촉을 꺼렸지만 200명은 수용할 수 있는 가장 큰 무도회장을 가졌던 포틀랜드 공작 등 빌 브라이슨만의 시점으로 재탄생한 영국 이야기들은 흥미로운 읽을거리다.
새로운 것들을 경험하기 위해 떠나는 여행이 아닌 자신이 사랑했던 곳과 아름다운 작별을 위해 떠난 그의 여행은 ‘좋든 나쁘든 영국의 모든 것을 사랑했다’는 빌 브라이슨의 고백으로 끝난다. 그의 고집스런 영국 사랑은 우리에게 신비로우면서도 낯선 영국과 영국인들의 이야기를 편안하게 들려준다. 빌 브라이슨이 전하는 ‘말로 다 전할 수 없도록 좋은 곳’, 영국만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다.
1. 다시 영국, 그리고 23년 전 _ 도버를 바라보며
나는 영국을 마지막으로 한번 돌아보고 싶었다. 20년간 나의 보금자리였던 이 친절한 녹색 섬에 대한 고별여행이랄까 뭐 그런 걸 하고 싶었던 거다.
2. 첫 기억 속으로 출발하다 _ 칼레에서 도버로
많은 세월이 흐른 뒤라 어서 다시 도버를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수년 전 하룻밤을 지새운 버스 정류장을 찾아내고는 은밀히 기쁨의 탄성을 자아내기도 했다.
3. 런던 찬양 _ 런던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나는 런던이야말로 파리보다 더 아름답고 흥미진진하며, 뉴욕 다음으로 가장 활기찬 곳이라고 말할 것이다.
4. 그때는 잘 몰랐던 도시, 와핑 _ 런던 옆 와핑
상태 나쁜 게 겨우 이 정도란 말이지? 어디 그럼 내가 솜씨 한번 발휘해 최악이란 어떤 건지 보여주지!
5. 왕의 나라 영국 _ 런던에서 윈저로
본능에 가까운 타인을 배려하는 이런 태도는 늘 감탄스럽다. 특히 영국에서는 이런 상황이 일상이어서 주목받지 못한다는 점은 더욱 감동스럽다.
6. 가족을 만들다 _ 버지니아 워터, 그리고 에그햄
‘저 사람이야말로 내게 필요한 이다.’
그로부터 여섯 달 후 우리는 근처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7. 단점을 중얼거리며 산책하다 _ 본머스에서 크라이스트처치까지
끝나지 않을 것 같이 계속 이어지는 겨울비를 생각해봐. BBC방송국에서 「캐그니와 레이시」라는 드라마만 줄곧 틀어대는 걸 봐야 한다는 사실을 생각해봐. 생각해보라고….
8. 모든 것이 너무 많은 나라 _ 솔즈베리
장담하건데 스톤헨지의 배후인물은 아마도 사람들을 부추겨 일을 시키는 데 타고난 재주를 지닌 인물이었음에 틀림없다.
9. 지도만 들고 간다는 것_ 도싯 해안도로
적어도 이번 여행에서 나는 가장 어려운 대목을 해냈다. 이제 나는 문명세계로 돌아간다. 앞으로는 좋은 일만 생길 것이다.
10. 걷기 여행 _ 룰워스, 그리고 웨이머스를 지나
항상 하는 말이지만 성공적인 도보여행의 비결은 언제 멈춰야만 하는지를 정확히 아는 데 있다.
11. 계획대로 되는 건 아니다_ 엑서터, 그리고 반스테이플
다른 방에 있으면서도 방금 만든 케이크의 크림을 한 번 찍어먹어 보려는 걸 귀신같이 알아내는 여자들의 재주는 도대체 어디서 난 거란 말인가?
12. 비오는 날의 날벼락 _ 웨스턴 슈퍼메어에서 몬머스, 그리고 시몬스 야트
온 세상 사람들이 다 그러는 건 아닐지도 모르지만, 영국에서라면 방문객의 흔적은 단연 낙서나 먹다 버린 맥주캔이 뒹굴어 다니는 것이다.
13. 다시 생각해봐야 할 때가 아닐까? _ 옥스퍼드
1264년 이후로 이 고장에는 근사한 건물들만 들어서왔어. 그러니 이번에는 기분전환 삼아 못난이 건물도 세워보지, 뭐.
14. 그림책에나 나올 법한 풍경들 _ 코츠월드 구릉지, 그리고 솔트웨이
영국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정교하게 꾸며져 마치 공원 같은 전원 풍경을 누리고 살고 있다. 그런데도 분통이 터지도록 그 사실에 대해 잘 모른다.
15. 영국인의 천재적 작명센스 _ 밀턴케이스에서 런던, 캠브리지
매우 매력적인 여운이 남는 그곳의 이름은 ‘악마의 제방’이었다. 한 번도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는 장소였지만, 왠지 뭔가 있을 것만 같이 느껴졌다.
16. ‘귀족탐구’ 여행을 떠나다_ 렛퍼드와 워크솝
포틀랜드 공작 5세인 스코트 벤팅크는 오랫동안 내 마음속의 영웅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노년의 벤팅크는 역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은둔자다.
17. 이것은 시네마라다_ 링컨과 브레드포드
브레드포드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는 브레드포드와 비교해보면 세상에 안 좋은 곳이 없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다.
18. 집에 들르다 _ 솔테어와 빙리, 해러게이트
산맥 너머에는 우리 집과 사랑하는 가족이 있다는 사실이 가슴이 저리도록 생생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예정했던 여행을 다 마치지 못하고 돌아가면 부정행위를 한 듯한 느낌이 든다.
19. 판타지 속으로 _ 맨체스터에서 위건
이 책에서 수십 페이지에 걸쳐 내가 이야기한 것들을 딱 이루어놓은 셈이다. 영국 전체를 돌며 유일하게 본 것인데 그게 찢어지게 가난한 위건이라는 점도 기뻤다.
20. 과음의 규칙_ 리버풀에서 랜디드노까지
가보니 쓰레기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아이스크림 포장지, 담뱃값, 비닐봉지로 다른 때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주변 자연환경을 꾸미고 있었다.
21. 훌륭한 게스트하우스를 선택하는 법_ 랜디드노, 블라이나이 페스티니오그, 포스마독
내가 선택한 게스트하우스는 십중팔구 담배를 입에 물고 걸걸한 기침을 해대서 가래침을 좀 뱉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탐욕스러운 남자가 주인일 게 분명하다.
22. 영국에서 기차를 탄다는 것 _ 포스마독에서 루드로우, 다시 맨체스터
포스마독을 출발한 지 무려 14시간 만에 블랙풀에 도착했다. 지치고 배고프고 수염도 다듬지 못했다. 고통과 비탄에 잠긴 상태로 각별히 가보고 싶지도 않았던 곳에 와버렸다.
23. 해변이 하나도 없는 리조트 _ 블랙풀, 모어캠블
넓은 나라에서 살다 영국에 오면 가장 적응하기 힘든 일 중에 하나가 이곳에서는 문밖으로 나가면 좀처럼 혼자 있지 못한다는 점이다.
24. 작은 나라 영국 _ 보우니스, 윈더미어 호수
지형이 작은 게 좋다는 말이 아니라, 사람들이 바글거리는 섬나라에서 조촐하고 아담하면서 동시에 근사하고 멋진 모습을 간직해서 좋다는 것이다.
25. 탄광촌의 기적 _ 더럼과 애싱턴
한 때 애싱턴에는 1년 내내 강연회와 콘서트가 열렸고, 특강 형식의 철학회, 오페라회, 연극회 등등 비스무레한 모임이 셀 수도 없이 많았다.
26. 스코틀랜드와 사랑에 빠지다 _ 애든버러
스코틀랜드 사람들이 없었다면 이 세상이 얼마나 참기 힘든 곳이 될지! 스코틀랜드 인들이여 고맙다. 그리고 월드컵 우승을 차지하지 못한 일 따위는 신경 쓰지 마시라.
27. 어딜 가나 그곳은 영국이다_ 애버딘을 거쳐 인버네스로
진짜 문제는 애버딘이라기보다는 현대 영국의 특성에 있었다. 영국의 도시는 한 벌의 트럼프카드 같다. 같은 카드인데 순서만 달라지는 것이다.
28. 북단을 가다 _ 인버네스, 서소, 존 오그로츠
집에서 멀어져 장기간 여행을 해왔던 나에게 드디어 올 것이 와버렸다. 내가 가장 두려워했던 순간이었다. 혼잣말로 대답도 못할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대고 있었다.
29. 세상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다 _ 글래스고
이게 바로 글래스고다. 근래에 들어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루어 세련되게 변했지만, 그 한쪽 끝에는 늘 공갈과 협박이 남아 있다.
30. 나는 영국의 모든 것을 사랑했다_ 집으로
갑자기, 순식간에, 영국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다. 그러니까 나는 영국의 모든 것을 사랑했다. 좋던 나쁘던 영국의 모든 것을 사랑했다.